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(문단 편집) === 초기 이력 === || [[파일:external/historyweb.dennikn.sk/Paulus.jpg|width=100%]] || 193cm의 큰 키에 잘 어울리는 세련된 옷차림과 점잖은 몸가짐 덕분에 친한 친구들은 그를 '영주(der Lord)'라 부르곤 했는데, 이를 잘못 번역해서인지 2000년대 중반에 발매된 영미권 서적에서조차 그를 [[귀족]] 출신으로 기술하기도 했다.[* 다른 별명으로는 "순교자"가 있다. 항상 엄숙한 표정을 가졌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.] 하지만 실제로는 헤센 지방의 국스하겐(Guxhagen) 출신으로 평민 가정에서 태어났다. 아버지가 소년원의 부기 계원으로 근무하면서 헤센나사우의 재무관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. 1910년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[[크릭스마리네|해군]] [[장교]]에 지원했으나 낙방하였고, 이후 필립-마르부르크 대학에서 잠시 [[법학]]을 공부하다가 육군 [[사관후보생]]으로 보병 111연대에 입대하였다. 당시 함께 훈련을 받던 사관생도 중 [[루마니아 왕국]] 왕실과 연결된 명문 귀족 가문의 형제가 있었는데 이들이 자신의 누이인 엘레나 콘스탄체 로제티졸레스쿠를 파울루스에게 소개시켰고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1912년 7월 4일 결혼한다. 1914년에 큰딸 올가가 태어났고 1918년 4월엔 쌍둥이 형제인 프리드리히와 에른스트 알렉산더가 태어났다. [[제1차 세계 대전]]에선 [[독일 제국군]] 소위로 종군했고 서부전선과 [[동부전선]]([[세르비아 왕국(1882년~1918년)|세르비아 왕국]] 방면)에서 각기 [[참모]]장교로 종군하였다. 1918년 [[장군참모]] 과정을 마치고 [[대위]]로 진급하여 종전을 맞게 되었다. 파울루스와 같이 2차 대전에서 독일군의 대부분의 [[상급대장]]-[[원수(계급)|원수]]들이 대위로 종전을 맞았는데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진급이 꽤 빠른 편. 종전 후에 [[베르사유 조약]]으로 병력 규모가 10만으로 제한된 [[바이마르 공화국]] 국가방위군의 정예 장교 4천 명에 선발되는 등 파울루스는 상당히 인정을 받은 장교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